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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호 한의학박사 ] |
글. 김양호 한의학박사
레시피. 박상혜 음식연구소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10월 한 달은 경로의 달입니다. 진료실에서도 이맘때면 어르신들의 호소가 비슷하게 모입니다.
“원장님, 여름에는 그래도 먹었는데 요즘은 입에 안 맞아서 대충 넘깁니다.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지,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도 같고요.”
여름내 땀 흘리고 지친 몸은 가을이 되면 밥맛이 돌아온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름 동안 줄어든 식사량과 기력이 가을까지 회복되지 못한 채 이어지고, 거기에 건조한 날씨가 겹치면서 입맛과 체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 가을은 거두는 계절, 마르는 계절입니다
《황제내경·소문》 사기조신대론편은 가을 석 달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가을 석 달을 일러 용평이라 한다(秋三月, 此謂容平).” 만물이 성숙하고 안정되어 결실을 거두는 때라는 뜻입니다. 《동의보감》에도 이 대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같은 책 음양응상대론편에는 가을의 성질을 한마디로 압축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른 기운이 이기면 몸이 마른다(燥勝則乾).” 가을 공기가 건조해지면 몸속 진액도 함께 마르기 쉽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입이 마르고, 피부가 당기고, 변이 굳는다고 호소하는 어르신이 늘어납니다.
다만 입 마름과 변비를 모두 계절 탓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수분 섭취 부족, 복용 중인 약, 기저 질환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증상이 이어진다면 식사만 바꿀 일이 아니라 진료를 받아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 나이가 들면 배고픔과 갈증의 신호가 약해집니다
어르신 진료에서 제가 가장 자주 확인하는 것은 근육과 수분입니다. 나이가 들면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도, 갈증을 알리는 신호도 무뎌집니다. 배가 덜 고프니 식사량이 줄고, 목이 덜 마르니 물을 덜 마십니다. 그렇다고 몸이 영양과 물을 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는 근육입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고, 식사량이 줄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어르신에게는 일반적으로 하루 체중 1kg당 1.0~1.2g의 단백질이 권장됩니다. 체중이 60kg이면 하루 60~72g이고, 세 끼로 나누면 한 끼에 20~24g입니다. 밥과 나물 반찬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양입니다.
그렇다고 식사량을 갑자기 늘리라고 하면 부담부터 커집니다. 어르신께는 두부, 달걀, 흰살생선, 부드럽게 익힌 닭고기 같은 단백질 반찬을 매 끼니 조금씩 더하도록 권하는 편이 훨씬 잘 지켜집니다. 다만 신장질환이 있는 분은 단백질 섭취량을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근육은 밥상만으로 지켜지지 않으므로 걷기와 근력 운동도 함께 필요합니다.
둘째는 수분입니다. 하루 필요량은 체중 1kg당 약 30mL를 참고하는데, 체중 60kg이면 약 1.8L입니다. 이 수치는 국, 죽, 과일 등 음식 속 수분까지 포함한 대략의 기준입니다. 물만 그만큼 마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갈증이 알려주는 대로만 마셔서는 이 양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갈증을 기다리지 말고 식사 사이에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나누어 드시기 바랍니다. 심부전이나 신장질환으로 수분을 제한하고 있다면 반드시 의료진이 정해 준 양을 따라야 합니다.
식사와 수분이 함께 줄면 작은 병도 길어지기 쉽습니다. 회복에 필요한 조건이 같이 줄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 끼가 곧 몸의 회복 여건이라고 제가 늘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 마른 기운을 눅이는 가을 밥상 재료
가을 밥상에 올리기 좋은 재료로는 배, 무, 배추, 연근, 마, 버섯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가을철에 오래 권해 온 음식들입니다. 다만 특정 재료의 효능을 기대하기보다, 어르신이 편하게 드셔서 식사량을 유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배는 껍질을 벗겨 얇게 썰어 드시거나 부드럽게 익혀도 좋고, 편으로 썰어 미지근한 물에 우려 마셔도 좋습니다. 무와 배추는 푹 끓여 국이나 나물로 올리시고, 마와 연근은 갈아서 죽에 넣으면 씹는 부담이 적습니다. 버섯은 질긴 부분을 손질해 잘게 썰어 국이나 달걀찜에 넣으면 좋습니다. 도라지와 더덕은 질기기 쉬우니 잘게 다져 충분히 익혀 쓰십시오.
여기에 단백질을 한 그릇에 함께 담는 방법도 있습니다. 무를 넣은 생선국, 버섯을 넣은 달걀찜, 마나 연근을 넣은 두부죽이 그런 예입니다. 씹는 힘이 약하거나 사레가 자주 드는 분은 부드럽게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진료를 통해 삼킴 기능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국물은 수분 보충에 보탬이 되지만 짜게 끓이면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간은 싱겁게 하고, 국물을 많이 드시는 것으로 물 섭취를 대신하지는 마십시오.
▲ 요즘 가장 권하고 싶은 한 그릇, 추어탕
여러 반찬을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어르신께 한 그릇만 권하라면, 저는 추어탕을 꼽습니다. 단백질과 채소, 따뜻한 국물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꾸라지는 생것 100g 기준으로 단백질이 16g 안팎이고 지방은 3g 미만으로 알려져 있어, 고기 반찬이 부담스러운 어르신께 알맞은 단백질원입니다. 뼈째 갈아 끓이는 조리법이라 칼슘 섭취에도 도움이 됩니다. 곱게 갈아 끓이므로 씹는 부담도 적습니다. 다만 한 그릇에 든 영양소의 양은 미꾸라지의 양, 조리법,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추어탕 한 그릇으로 하루 영양을 모두 채우거나 낙상과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문제에는 비타민 D, 근력 운동, 필요하면 약물 치료가 따로 필요합니다.
추어탕이 가을 음식으로 어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 추(鰍)는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추어탕은 예로부터 가을 보양식으로 즐겨 왔고, 《동의보감》 같은 의서에서도 미꾸라지를 속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돕고 갈증을 풀어 주는 식재료로 설명해 왔습니다. 이런 전통적 설명은 음식문화의 맥락에서 이해하되, 질병 치료 효과와는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르신께 드릴 때는 미꾸라지를 곱게 갈고 시래기도 충분히 익혀 질기지 않게 준비하십시오. 소금과 장류, 매운 양념은 과하지 않게 쓰시고, 고혈압이나 신장질환이 있는 분은 국물까지 무리해서 드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르신이 미꾸라지를 직접 손질해 끓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시중에서 파는 추어탕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제품마다 양념과 나트륨 함량이 다르니 구입할 때 영양성분표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덜 짠 제품을 고르십시오. 여기에 푹 삶은 시래기나 우거지를 더해 끓이면 추어탕과 맛의 궁합이 좋고, 식이섬유와 칼슘 같은 영양소를 보탤 수 있어 뼈 건강을 챙기는 식단에 보탬이 됩니다. 건더기가 푸짐해져 국물보다 건더기 위주로 드시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시래기가 뼈를 튼튼하게 하거나 골다공증을 치료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치료와 운동은 따로 챙기셔야 합니다. 이미 간이 된 제품에는 장류를 더 넣지 마시고, 짜다고 물을 타더라도 전체 나트륨 양은 줄지 않으니 국물은 적당히 드십시오.
추어탕을 죽으로 드실 때는 멥쌀보다 찹쌀을 권해 볼 만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찹쌀을 따뜻한 성질의 곡물로 보아, 속이 차고 입맛이 떨어진 분의 식사에 오래 활용해 왔습니다. 속이 찬 어르신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전통적 식이 관점에서 나온 설명입니다. 다만 찹쌀은 끈기가 강해 많이 드시면 오히려 더부룩할 수 있으니 소량부터 시작해 속이 편안한지 살피십시오. 당뇨병이 있는 분은 쌀의 양을 조절해야 하고, 삼킴이 불편한 분은 죽의 농도와 형태를 의료진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조리법은 아래 요리연구가의 레시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거창한 보약보다 매일의 한 끼가 먼저입니다
가을은 거두는 계절입니다. 어르신께는 그 결실이 거창한 보약이 아니라, 여름 동안 줄어든 식사량과 체력을 다시 채우는 일입니다. 지금 밥상을 잘 채워 두시면 겨울을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거창한 보약보다 매일의 한 끼가 먼저입니다. 오늘 저녁상에 부드럽게 조리한 제철 반찬 하나, 부드러운 단백질 반찬 하나, 따뜻한 국이나 죽 한 그릇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에 많이 드시기 어렵다면 조금씩 나누어 드시고, 식사 사이에는 물도 챙기십시오.
다만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가 이어지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새로 생겼다면 계절 탓으로만 넘기지 말고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추어탕레시피
앞선 칼럼에서 가을 어르신 밥상으로 소개한 추어탕의 조리법입니다. 어르신이 드실 음식이니 미꾸라지는 곱게 갈고 시래기는 푹 익혀 부드럽게 끓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 재료 : 미꾸라지 500g, 생강 1조각, 통마늘 5알, 들기름 1큰술, 물 약간
국물과 양념 : 물 2,000mL(2L), 된장 1큰술, 고추장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2큰술, 다진 대파 1대, 액젓 2큰술(간을 보며 가감)
시래기와 밑간 : 삶아서 물기를 뺀 시래기 1kg(우거지로 대체 가능), 된장 1큰술, 들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마무리 : 깻잎 10장, 부추 약간, 거피하지 않은 들깨가루 50g
손질용: 소금, 밀가루 약간
△ 만드는 법
① 미꾸라지에 소금을 넣고 문질러 10분간 그대로 둡니다. 소금을 넣으면 미꾸라지가 튀어 오르니 뚜껑을 덮어 두십시오. 이어 밀가루를 넣고 바구니에서 문질러 점액과 이물질을 없앤 뒤, 물로 3~4번 헹굽니다. 손질 후에는 손과 도구를 깨끗이 씻으십시오.
② 손질한 미꾸라지에 생강, 통마늘, 들기름, 물 약간을 넣고 압력솥에서 뼈까지 푹 삶습니다. 압력솥은 설명서의 최소 물양을 지키고, 압력이 완전히 빠진 뒤 뚜껑을 여십시오.
③ 삶은 미꾸라지는 한김 식힌 뒤 믹서에 뼈째 곱게 갑니다. 뜨거운 채로 갈면 뚜껑이 튀어 화상 위험이 있습니다. 어르신께 드린다면 체에 한 번 걸러 뼈 입자가 남지 않게 하십시오.
④ 냄비에 간 미꾸라지와 물 2,000mL를 넣고, 된장·고추장·고춧가루·다진 마늘·다진 대파를 풀어 끓입니다.
⑤ 삶은 시래기는 씻어서 질긴 부분을 정리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된장·들기름·다진 마늘로 조물조물 밑간합니다.
⑥ 국물이 푹 끓어오르면 시래기를 넣고 줄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입니다.
⑦ 액젓으로 간을 맞춥니다. 한꺼번에 넣지 말고 조금씩 넣으며 맛을 보십시오. 깻잎과 부추를 넣고 2~3분만 더 끓입니다.
⑧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넣어 완성합니다. 들깨가루를 넣은 뒤에는 눌어붙기 쉬우니 불을 세게 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