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비빔밥, 라면과 냉동김밥, 한국식 치킨과 과자까지 한국과 연결된 음식이 세계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정부와 업계, 언론은 이 흐름을 ‘K푸드 열풍’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열풍이 우리가 지켜 온 한식의 세계화인지, 한국산 식품의 해외 판매 확대인지 구분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말이 같은 뜻처럼 쓰이는 동안 무엇이 성장했고 무엇이 가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먼저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식은 한국 사회에서 형성되어 이어져 온 음식과 식문화를 가리킨다. 재료를 고르고 저장하는 방식, 장과 김치로 대표되는 발효의 지혜, 밥을 중심으로 국과 반찬이 놓이는 상차림,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까지 들어온다. 반면 K푸드는 한국과 연결된 음식과 식품이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전통 한식도 들어가지만 한국 기업의 가공식품, 한국 브랜드의 해외 생산품, 한국식 양념을 입힌 현지 메뉴까지 폭넓게 포함된다. 다만 어디까지를 K푸드로 볼 것인지는 아직 하나의 공식 정의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생산지와 조리법, 브랜드 관리 주체에 따라 범위가 달라진다. 합의되지 않은 용어를 합의된 것처럼 쓰는 데서 혼선이 시작된다.
두 개념의 관계는 사례로 분명해진다. 김치는 한국의 발효 문화를 담은 한식이면서 해외에서 팔리면 K푸드로도 불린다. 그러나 매운맛 라면이나 한국식 소스를 얹은 현지 메뉴를 전통 한식과 같은 자리에 놓기는 어렵다. 해외에서 만든 김치는 문화적 계보로는 한식과 닿아 있지만 ‘한국산’이라 부를 수 없다. 한식이냐, 한국산이냐, 한국 브랜드냐는 서로 다른 질문이며, ‘K푸드’ 한 단어에 뭉뚱그려지면서 소비자와 정책 당국 모두 판단의 기준을 잃고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상품의 성공이 곧 문화의 성공으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라면이 해외에서 잘 팔리고 냉동김밥이 현지 유통망에 들어간 것은 분명한 산업적 성과다. 하지만 상품 구매는 한식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일 뿐, 문화 이해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판매 실적을 ‘한식의 세계화’라는 간판으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제대로 측정하지 않은 성과를 자축하는 셈이 된다.
한식의 이미지가 일부 상품의 맛으로 좁아지는 위험도 가볍지 않다. 매운 라면과 떡볶이, 양념치킨이 K푸드의 얼굴로 반복 소개되면 한국 음식은 맵고 자극적인 간편식으로 각인되기 쉽다. 맑은 국과 나물, 다양한 발효식품,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상차림은 그 뒤로 밀려난다. 인기에만 기댄 이미지는 유행이 빠르게 지나간 뒤 남을 것이 적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반대 방향의 과잉도 경계해야 한다. 발효식품과 채소가 많은 한식의 특성을 근거로 모든 K푸드를 건강식처럼 홍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가공식품 가운데는 나트륨과 당류, 열량이 높은 제품도 있다. 한식 문화의 특성과 개별 제품의 영양 성분은 따로 확인할 일이며, 한국 음식이라는 이름이 건강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현지화를 둘러싼 논의도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종교와 알레르기, 채식, 염도와 매운맛을 반영해 메뉴를 바꾸는 것은 세계화에서 자연스러운 전략이며, 변형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체성이 훼손됐다고 단죄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변형의 성격을 밝히지 않는 데 있다. 전통 조리법의 재료와 기술을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풀어낸 음식은 ‘현대 한식’이라 할 수 있지만, 외래 음식에 한국식 양념을 더한 메뉴는 ‘한국식 음식’ 이나 ‘한국풍 메뉴’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 한국과 관계없는 제품이 한글 포장이나 한국풍 디자인만 빌려 한국산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원산지 오인의 문제다. 다만 해외에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방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조국과 원재료, 브랜드를 정확히 밝혔는지, 남의 상표와 포장을 무단으로 썼는지는 따로 따져야 할 일이다.
정책과 산업 지원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 구조적이다. 지역 전통음식의 조리법을 기록하고 전승자를 길러 내는 일, 해외 한식당의 조리 인력과 교육을 지원하는 일, 식품기업의 물류와 해외 인증, 유통망을 돕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이 모두를 ‘한식 세계화’나 ‘K푸드 지원’이라는 하나의 간판 아래 두면 어떤 사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기 어렵다. 전통음식 전승 사업에 수출액을 성과 지표로 들이대면 시장은 작아도 보존 가치가 큰 음식이 밀려나고, 가공식품 수출 지원을 한식 문화 보존의 성과로 설명하면 실제 효과가 흐려진다. 문화 보존과 산업 육성은 연결될 수 있지만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통계의 문제는 더 뿌리 깊다. 정부는 2025년 10월 2030년 수출 150억 달러 목표를 내놓았다가 같은 해 12월 23일 210억 달러로 목표를 바꿨고, 그사이인 12월 2일에는 여야 의원과 민간이 출범시킨 K푸드 협의회가 식품 제조·외식·유통·푸드테크·식품기기까지 아우르는 1천억 달러 공동 목표를 내놓았다. 숫자가 크다고 해서 같은 것을 센 것은 아니다.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각 목표의 포함 품목과 산정 방식을 확인할 수 없다. 한국산 식품 수출, 한국 브랜드의 해외 생산품, 해외 한식당 매출, 연관산업은 서로 다른 지표인데 이를 ‘K푸드’ 한 단어로 묶으면 무엇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없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쓰는 ‘케이-푸드 플러스(K푸드+)’는 농식품에 농산업 제품까지 더해 집계한 것이라, 범위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면 성장이 과대평가된다. 수출이 늘었다고 국내 농가와 지역 생산자의 소득이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원료 구매액과 고용, 부가가치를 함께 밝히지 않는 수출 보도는 반쪽짜리 성적표에 가깝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K푸드라는 말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K푸드는 해외 시장과 소비 현상, 수출을 아우르는 상위의 홍보 용어로서 여전히 쓸모가 있다. 다만 설명하려는 대상에 따라 아래 단계의 말을 정확히 골라 써야 한다. 음식과 식사방식, 생활문화의 맥락에는 ‘한식’ 또는 ‘한국 식문화’를, 역사적 전승과 지역성이 핵심이면 ‘전통 한식’을, 전통의 재료와 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면 ‘현대 한식’, 한식 메뉴를 간편식으로 상품화했다면 ‘한식 기반 가공식품’이라 부른다. 외래 음식에 한국식 양념과 조리를 결합한 것은 ‘한국식 음식’, 생산지가 중요하면 ‘한국산 식품’, 기업과 상표가 중요하면 ‘한국 브랜드 식품’이다. 문화적 설명과 원산지 표시는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 구분이 한식을 박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떡볶이와 김밥, 치킨, 라면처럼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대중화한 음식도 오늘의 식생활을 보여 주는 소중한 문화다. 필요한 것은 변화를 막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이어받았고 무엇을 바꾸었는지를 솔직하게 설명하는 일이다. ‘정통’을 말한다면 조리법과 재료, 전승이라는 근거를 대야 하고, 원산지 표시나 상표 보호, 국가 인증 같은 제도는 정통성을 판정하는 도장이 아니라 원산지와 품질, 권리를 확인하는 장치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세 가지로 모인다. 정책 사업은 전통음식의 전승과 기록, 해외 한식 확산, 식품 수출산업 육성을 목적별로 나누고 각각에 맞는 성과 지표를 따로 두어야 한다. 통계는 한국산 식품의 수출, 한국 브랜드의 해외 매출, 해외 한식당 매출, 연관산업 실적을 구분하고 집계 범위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표시와 홍보는 문화적 계보와 제조국, 원재료 원산지, 현지화 정도를 소비자가 읽을 수 있게 밝혀야 한다.
두 이름을 정확히 나눠 부를 때 한식의 정체성은 더 선명해지고 K푸드의 성과도 더 믿을 만해진다. 세계화는 이름을 크게 외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한식의 세계화란 한국 음식이 해외에서 팔리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의 문화적 계보가 함께 건너가는 일이다. 무엇을 한국의 음식문화라 부를지, 무엇을 한국의 상품이라 부를지,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때, 세계화는 구호가 아니라 문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