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비빔밥이 유명한 도시, 비빔밥의 이야기가 궁금한 도시로
    • 대한민국식애인포럼·전주관광재단 공동 '전주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 및 특별세미나' 참가기
    • 참가 전문가들이 전주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참가 전문가들이 전주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사)대한민국식애인포럼(이사장 홍기운, 이하 식애인포럼)과 (재)전주관광재단(대표이사 용선중)이 주최한 '전주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 및 특별세미나'를 통해 전주에 처음 와 봤다. 지난 23일 아침 사당역에서 탄 버스에는 나처럼 처음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주를 잘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정이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증이 있었다.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한 해 1,500만을 넘은 해도 있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만으로도 이름난 도시, 타 지역에서도 간판에 '전주'로 시작하면 맛집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전주가, 왜 전문가 70여 명을 버스에 태워 초빙했을까. 먹는 것으로 이미 부자인 도시가 왜 미식을 고민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가. 이 질문이 내가 참가한 1박 2일의 주제였다.

      △한옥마을 1,500만의 뒷면
      전주 가족회관의 전주비빔밥에서 시작된 일정은 전라감영의 전통공연 관람과 한옥마을 음식문화 체험으로 이어졌다. 한옥마을을 한복 입고 다니는 인파, 매장 앞에 음식을 사려고 줄 선 사람들, 사진을 찍으려고 스팟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 골목 골목 보이는 이미지가 다채로웠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게 통계를 보면 문제가 보인다.
      한식마을 전경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한식마을 전경 /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2021~2025년 한옥마을이 있는 전주시 완산구의 관광객 숙박 비율은 평균 10.1%였다. 전라일보 보도는 이를 "숙박률 10%의 저주"라고 불렀다. 관광객 10명 중 9명이 당일 방문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낮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가 밤 9시가 되면 한 블록만 벗어나도 거리가 한산해진다고 한다. 방문객은 많지만 체류와 소비가 이어지지 않는 당일치기 구조가 굳어졌다.

      소비 구조에도 문제가 보인다. 전북 전체로 보면 2023년 관광 소비 7,504억 원 가운데 식음료업 지출이 4,517억 원(60%), 방문자의 43.6%가 방문 이유로 음식을 꼽았다. 식음료업 비중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지만, 관광객 수 대비 소비 총액은 이웃 전남(9,971억 원)·충북(1조 원)보다 적었다.

      통계의 숫자는 한 가지를 시사한다. 한옥마을을 찾는 발길이 연간 1,500만 번에 가깝게 이어지고 식당 매출은 올라도, 그것이 체류와 재방문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소비는 많은데 머물 이유가 약하다'를 보여준다. 전라일보가 이 도시를 "'한옥마을'에 갇힌 전주, 밤엔 지갑 닫고 떠난다"고 표현했는데 꼭 맞는 표현 같다.

      반면 외국인 통계는 대조적이다. 전주시가 외국인 관광객 410명을 조사한 2025년 실태조사에서 숙박 관광 비중은 74%였고, 평균 체류는 2.69일, 1인당 평균 지출은 27만 원 안팎으로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물론 표본이 410명이고 내국인 통계와 측정 방식이 다르므로 두 숫자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해석은 분명하다. 내국인은 대체로 먹고 떠나고, 외국인은 머문다.

      그리고 같은 조사에서 외국인이 전주를 찾는 첫째 이유는 음식이 아니라 '역사 및 문화유적 체험'(77.1%)이었다. 음식 만족도는 4.54점으로 높았지만 언어소통(4.11점)과 대중교통(4.22점)은 개선 과제로 꼽혔다. 외국인을 머물게 하는 것은 음식 단독이 아니라, 음식이 역사·문화와 한 덩어리로 경험되는 방식이다. 이 점이 내국인 전략에도 힌트를 준다.

      같은 도시의 두 관광이다. 전주가 고민하는 질문의 정체가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 떠나는 손님을 머물게 하는 손님으로 바꿀 카드가 필요한데, 그 카드의 후보가 미식이다. 미식은 이미 2026년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레시피코리아는 2026년 외식 트렌드로 '미식 일상화'와 '경험하는 K-푸드'를 꼽았다. 여기저기서 미식관광 이야기가 나오더니 이제는 외식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전주완주 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 코스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전주·완주 미식관광 전문가 팸투어 코스 / 사진제공=대한민국식애인포럼
      그래서일까. 이번 코스에 오른 것들을 펴 보면 답이 보인다. 가족회관의 전주비빔밥, 전라감영의 전통공연과 한옥마을 음식문화 체험, 원도심 상권, 경기전미가의 막걸리한상과 가맥 문화, 국립무형유산원 관람, 한울밥상의 가정식 백반까지. 음식점 하나만 파는 코스가 아니라 음식에 문화유산과 시장, 숙박을 엮어 하루를 채우는 조합이었다. 전주의 대표음식과 대표관광지를 골고루 배치해 미식관광 루트를 만들려는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민속학자 루시 롱(Lucy Long)은 미식관광이란 "타자의 식문화에 대한 의도적이고 탐구적인 참여"로 정의했다. 외국인에게 전주 비빔밥은 낯선 타자의 식문화지만, 내국인에게는 익숙한 맛이다. 낯섦이 있는 곳에 참여가 있고, 익숙함이 있는 곳에는 스쳐 가는 소비가 있다. 하지만 롱이 말한 '타자'는 외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세대까지 아우른다. 내국인에게도 낯선 전주는 있다. 다만 아직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전주에 와 보지 않아도 전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내국인에게, 어떻게 그 낯섦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전주가 지금 전문가 70여 명을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초코파이가 대답했다
      의외로 의문에 먼저 답한 건 저녁의 세미나장이 아니라, 점심 때 가족회관의 비빔밥정식을 마친 뒤 이어진 거리 자유투어 길이었다. '전주에서 유명하다'고 얼핏 들어 알고는 있지만, 그곳이 왜 유명한지는 몰랐다. 대전의 성심당 같은 느낌으로 찾아간 풍년제과 본점은 흔한 동네 흔한 제과점의 비주얼로 서 있었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평소의 나라면 매장을 둘러보고 바로 나갔을 것이다.
      풍년제과 전경
      풍년제과 전경
      그러나 매장으로 가는 길, 식애인포럼 이운성 부회장에게 들은 풍년제과의 이야기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창업주 강정문이 직접 구운 전병을 자전거에 싣고 전북 일대를 돌며 팔았다고 한다. 그 전병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전병 과자의 시초로 꼽히고, 지금의 인기 있는 오리지널 수제 초코파이도 이곳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호기심이 들었고 그날 저녁, 그 이야기가 내 지갑을 열었다. 풍년제과 초코파이 세트를 구매했다.

      돌아보면 그 초코파이는 내가 살 일이 없었던 물건이다. 사진 한 번 찍고 지나쳤을 제과점 앞을, 이야기 하나가 다시 찾아가게 만들었다. 몰랐으면 구경만 했을 초코파이가, 알고 나니 먹어보고 싶은 상품이 되어 있었다. 물론 초코파이 구매는 소비 한 건이지 체류 연장이 아니다. 하지만 앞선 질문 '내국인에게 어떻게 낯섦을 심어줄 것인가'의 답은 이 상자에 있었다.

      미식은 '잘 먹는 것'이 아니라 '알고 먹는 것'이라고 한다. 미식이 '알고 먹는 맛'이라면 미식관광은 '알아가는 맛'이다. 전주에는 먹는 것이 많다. 부족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장치다. 최태호 혜전대 교수의 발표 '전주 전통음식의 관광상품화 및 브랜드 전략'도 결국 그 장치를 찾는 작업이었다.

      △전문가 70명의 숙제
      전주시가 전문가를 초빙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연간 1,500만의 발길이 이어지는 도시는 자신이 뭘 가졌는지는 알지만, 자신에게 없는 게 뭔지는 밖의 눈이 필요하다. 이번 프로그램의 구조는 체험(Taste), 역사와 문화(Story), 시장과 상권(Market), 정책(Policy) 제안을 잇는 'Taste-Story-Market-Policy' 설계로, 말 그대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한 초청'이다.
      맛의 도시 전주 글로벌 미식관광도시의 미래를 열다 특별세미나 모습
      '맛의 도시 전주! 글로벌 미식관광도시의 미래를 열다' 특별세미나 모습
      패널토론 모습  사진 대한민국식애인포럼
      패널토론 모습 / 사진= 대한민국식애인포럼
      저녁의 특별세미나가 그 무대였다. 식애인포럼의 법인 설립 기념행사도 겸한 자리였다. '맛의 도시 전주! 글로벌 미식관광도시로의 미래를 열다'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 개회사에서 홍기운 이사장은 "오늘 우리는 단순히 전주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라며 "음식이 관광이 되고, 지역의 음식문화가 지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자리라고 밝혔다. 행사 도중에는 포럼 출범 24주년과 법인 설립 2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 커팅도 이어졌다.

      하정우 경기대 교수가 '미식관광! 지역활성화와 관광경쟁력을 좌우하다'로 기조강연을 맡고, 한철용 송호대 교수가 '전주 관광콘텐츠의 현황과 경쟁력 진단'을, 최태호 혜전대 교수가 '전주 전통음식의 관광상품화 및 브랜드 전략'을 발표했고, 민동규 전주관광재단 사무국장의 좌장 아래 김수인 전주대 교수, 박재완 남서울대 교수, 전영호 군장대 교수, 정인영 우송정보대 교수가 패널토론을 이어갔다.

      토론의 내용도 곱씹을 만한 것이었다. 김수인 전주대 교수는 전주의 식재료와 전통 헤리티지를 '고부가가치 미식 자산'으로 승화시키고, 음식과 문화, 공간을 연결해 체류와 소비가 이어지는 도시를 만들자고 했다. 박재완 남서울대 교수는 '보여 지는 전주음식'의 표준모델 개발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예약과 결제, 다국어 메뉴 같은 전환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귀에 남은 지적은 전영호 군장대 교수의 것이었다. 전주 관광소비의 80% 이상이 한옥마을 일대에 집중돼 있고, 체류형 관광 구조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정인영 우송정보대 교수는 백반과 국밥 같은 생활음식도 핵심 관광콘텐츠가 될 수 있다며, 그 맛을 지켜낼 조리 인력 양성을 함께 언급했다.

      진단이 초청의 목적이라면, 세미나장은 그 진단이 제시되는 자리였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마친 참가자들이 '전주 미식관광 활성화 전문가 의견서'를 작성해 체크아웃 시 제출했고, 의견서들은 컨설팅사업단에 정책제언 자료로 취합될 것이다. 밖의 눈으로 쓴 진단서가 정책의 입력이 될 때, 이 초청은 온전히 완성될 것이다.

      이번 전문가 팸투어의 시범운영이라는 이름도 같은 맥락이다. 전주시는 올해 '전주미식관광도시 구현'을 4대 추진 방향에 넣었고, 이번 프로그램은 그 일환이라 본다. 원도심으로 관광객을 끌어내려는 시정연구원의 제안, 완주 오성한옥마을까지 이어진 마지막 동선, 전주관광재단이 이미 추진 중인 전주·완주 연계 코스까지. 도시 하나가 아니라 루트를 연결하는 방향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숙박이 늘지 않는 이유가 이야기의 부재뿐이겠는가. 야간 콘텐츠, 숙박 인프라, 인근 지역과의 접근성도 원인이다. 스토리는 여러 원인 가운데 가장 설계하기 쉬운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스토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해야 한다.

      1일차 저녁 막걸리한상을 먹은 후 찾은 남부시장 야시장은, 앞서 나온 '밤엔 지갑을 닫는다'는 보도와 달리 밤 9시가 넘어서도 사람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류형 관광의 핵심은 결국 '저녁 이후'에 있다. 기대할 수 있는 저녁이 있어야 머물고 싶어지지 않을까.

      전주는 더 많은 관광객이 필요한 도시가 아니다. 더 오래 머물게 할 이유가 필요한 도시다. 그 이유의 후보가 미식이다. 비빔밥이 유명한 도시에서, 비빔밥의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오는 도시로 바뀔 수 있는가. 그때 풍년제과 초코파이 한 상자는 기념품이 아니라 전주미식관광 상품의 성적표가 된다. 그 성적표를 받아 볼 날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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