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미정 칼럼] 한국인의 밥상에 깃든 발효의 지혜 3
    • 발효균의 세계 – 미생물이 만드는 맛의 비밀

    • 눈에 보이지 않는 요리사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 한 젓가락, 된장찌개 한 숟가락에는 수억마리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해서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만들고 당분을 변화시켜 신맛과 단맛의 조화를 이뤄내며, 때로는 알코올을 생성해 깊은 향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요리사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1849년에 완성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장을 담글 때 좋은 물을 쓰고 깨끗한 그릇을 써야하나, 무엇보다 공기와 습기가 알맞아야 제맛이 난다.” 당시로서는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지만, 이미 발효에 최적화된 환경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산균, 신맛의 마법사
      김치가 처음 담겨질 때는 아무맛이 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면서 서서히 새콤한 맛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는 류코노스토크 메센테로이데스(Leuconostoc mesenteroides)라는 유산균이 배추의 당분을 젖산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pH가 낮아지면서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김치 특유의 상큼한 맛이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온도에 따라 활동하는 유산균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김치를 처음 담글때는 류코노스토크균이 주도하지만, 온도가 높아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렴(Lactobacillus plantarum)이 주역으로 나선다. 이 균은 더욱 강한 산성을 만들어내며 김치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
      조선시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김장을 할 때 찬곳에 두어야 맛이 좋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낮은 온도에서 류코노스토크균이 천천히 활동하며 부드러운 신맛을 만들어내는 과학적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곰팡이균, 단백질 분해의 전문가
      전통장 제조의 핵심인 메주에서는 주로 아스퍼질러스 오리재(Aspergillus oryzae)와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같은 곰팡이와 세균이 활약한다. 이들은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구수한 맛을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이다. 콩을 삶고 메주로 만들어 메주를 볏짚에 싸서 발효시키는 전통 방법에는 깊은 과학적 근거가 숨어 있다. 볏짚 표면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바실러스균이 메주로 옮겨가면서 발효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가 활발하게 작용해 글루탐산, 아스파르트산 등의 감칠맛 성분을 대량 생산한다.
      『증보산림경제』에는 “메주를 뜨거운 곳에 두면 상하고, 너무 차가우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곰팡이균의 최적 생장온도가 25~35°C 내외라는 현대 미생물학 지식과 정확히 부합한다.
      이러한 단백질 분해효소들의 활동으로 소화되기 어려운 콩단백질이 잘게 쪼개어져 우리 몸에 쉽게 흡수되도록 한다.

      효모, 향미의 조율사
      막걸리나 식초 제조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효모다.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 같은 효모는 곡물의 전분을 당분으로, 다시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에스테르 화합물들이 전통주 특유의 향미를 만들어낸다.
      전통 누룩에는 효모뿐만 아니라 곰팡이, 세균이 함께 공존하는데 이러한 복합 미생물 군집이 만들어내는 맛의 복잡성은 단일 균주로 제조한 현대식 발효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독특함을 선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좋은 누룩을 만들려면 밀을 잘 빻아 반죽할 때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하고, 따뜻한 곳에 두되 너무 덥지 않게 해야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효모와 곰팡이의 최적 생장조건을 경험으로 터득한 조상들의 지혜를 볼수 있는 대목이다.

      발효과정에서 미생물은 단순히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 김치 발효초기에는 호기성 세균들이 산소를 소모해 혐기적 환경을 만들고, 이후 유산균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유산균이 만들어낸 산성 환경은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특정 유익균들의 생장을 촉진한다. 이러한 미생물계의 균형이 깨지면 발효는 실패한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유산균보다 부패균이 우세해지고, 염도가 낮으면 잡균이 번식해 이상 발효를 일으키는데 조상들이 “장 담글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이러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세심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최근 메타게놈 분석 기술의 발달로 전통발효식품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정체가 보다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다. 전통 된장에서는 300여종의 미생물이 발견되는데, 이들 각각의 맛과 영양에 고유한 기여를 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역별로 서로 다른 미생물 군집을 보인다는 것이다. 경상도 된장과 전라도 된장에서 발견되는 미생물 조성이 다르다 보니 이것이 바로 지역별 장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요인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의 존재도 모른채 이들과 수 천년간 공존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발효 기술은 현대 미생물학으로 분석 해봐도 완벽에 가까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과 함께 만들어온 우리 발효 문화야 말로 가장 오래된 바이오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매일 우리 밥상에 오르는 된장찌개, 김치, 간장, 고추장등의 발효식품 한 젓가락에도 놀라운 미생물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몸이 원하는 영양소를 가장 편안하고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발전되어온 우리의 발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기에 손색없는 조상의 지혜가 모아져 있는 귀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 안미정 한국발효식문화협회이사
      現 한국발효식문화협회 이사 (2024. 3 ~ )
      現 한식대가 선정 (대한민국한식포럼) (2021. 7. 1 ~ )
      現 제35회 신지식인 선정 (한국신지식인협회) (20. 7. 1 ~ )
      現 수산물식품조리명인 (한국조리협회) (2019. 11. 3 ~ )
      現 한국조립협회 상임이사 (2019. 3 ~ )
      現 성림 대표 (2016. 7 ~ )
      現 통영음식연구소 대표 (2020. 2. 26 ~)
      前 한국치유음식진흥원 부회장 역임 (2020)
      前 대한민국 국제요리&제과 경연대회 심사위원 (2019)
      前 Korea 월드푸드챔피언십대회 심사위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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