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②] 자연이 선물한 밥상, 제철 나물과 오방색의 항산화 에너지
    •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신유진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신유진

      [한식일보] 지난 기사에서 김치와 된장에 담긴 K-발효의 비밀을 살펴봤다. ‘저속노화의 비밀’ 두번째 기획 기사로 우리가 즐겨먹는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채소와 나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오방색의 지혜가 어떻게 우리 몸의 노화를 늦추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는지 과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한식의 풍부한 채소 중심 식단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세포를 보호하고 활력을 증진하는 자연의 약전(藥典)이다.

      오방색의 지혜, 과학 이전의 영양 다양성

      한식의 건강 효능은 다량 영양소의 균형뿐만 아니라, 식물 자체의 방어 물질인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섭취에 크게 기인한다. 파이토케미컬은 그리스어로 식물을 뜻하는 '파이토(phyto)'와 화학 물질을 뜻하는 '케미컬(chemical)'의 합성어다. 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같은 필수 영양소에는 속하지 않지만, 식물의 독특한 색, 향, 맛을 부여하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생리활성물질을 통틀어 일컫는단어다.

      식물은 해충, 곰팡이, 자외선 등 외부 스트레스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물질들을 생성한다. 현재까지 약 5만~13만여 종의 파이토케미컬이 발견되었으며, 인체 내에서 항산화, 항암, 항염, 면역력 증진 등의 작용을 하며 노화 방지와 만성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파이토케미컬을 섭취하는 한식의 지혜는 ‘오방색(五方色)’에 담겨있다. 오방색은 단순히 미학적 아름다움을 넘어, 현대 영양학에서 강조하는 ‘컬러푸드(color food)’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과학적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다양한 색상의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폭넓은 종류의 파이토케미컬을 섭취하도록 유도한다.

      △ 적색(赤): 토마토, 고추, 수박 등에 풍부한 ‘라이코펜(lycopene)’은 강력한 항산화제로, 심혈관 질환 예방, 노화 방지, 항암 효과가 입증되었다.
      △ 황색(黃): 당근, 단호박, 감 등에 풍부한 ‘베타카로틴(beta-carotene)’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어 시력 보호, 면역 기능 향상, 항노화 및 항암 작용을 돕는다.
      △ 청색/녹색(靑): 시금치, 깻잎, 브로콜리 등 녹색 채소의 ‘엽록소(chlorophyll)’와 ‘카테킨(catechin)’은 간세포 재생, 유해 물질 배출, 신진대사 촉진 등 해독 기능에 탁월하다.
      △ 백색(白): 마늘, 양파, 무, 도라지에 함유된 ‘알리신(allicin)’과 ‘퀘르세틴(quercetin)’은 항염, 항균, 항바이러스 효과가 뛰어나 면역력을 높이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심장 질환 예방에 기여한다.
      △ 흑색(黑): 검은콩, 흑미, 가지 등에 풍부한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예방하고, 혈관 건강, 시력 보호,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이처럼 오방색 철학은 복잡한 영양학적 지식을 '다섯 가지 색깔을 골고루 먹는다'는 직관적인 행동 원칙으로 압축한, 매우 효과적인 공중 보건 도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여러 색의 채소와 고명, 밥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비빔밥은 맛과 멋의 조화를 넘어 다양한 파이토케미컬을 한 번에 섭취하여 영양적 균형을 이루려는 선조들의 과학적 혜안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프레임스튜디오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프레임스튜디오

      제철 나물의 힘과 약용 뿌리의 비밀

      한식은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을 바탕으로 특정 식재료를 약재처럼 활용해왔다. 특히 제철 나물은 응축된 생명력과 풍부한 파이토케미컬이 담겨있다. 식물이 추위나 건조함 같은 스트레스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화학 물질을 더 많이 생성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 두릅은 인삼의 대표 성분인 사포닌을 다량 함유해 면역력 강화와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 △ 취나물은 항산화 물질인 클로로젠산 함량이 높아 항산화, 항염증, 항비만, 노화 억제에 도움을 준다. 쥐 실험에서 취나물 추출물을 섭취한 그룹은 면역세포 활성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 '풍(風)을 막아주는 나물'이라는 뜻의 방풍나물은 쿠마린계 성분으로 항바이러스, 해열, 진통 작용을 한다. 이렇듯 우리 식탁에 오르는 여러 제철 나물은 단순한 풍미를 넘어, 이를 섭취함으로써 식물의 정교한 방어 시스템을 우리 몸의 세포 보호와 건강 증진을 위해 활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약용 식물의 효능을 온전히 활용하려면 '생체이용률(bioavailability)'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삼의 핵심 성분인 진세노사이드는 분자량이 커서 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식의 전통 조리법과 발효의 지혜가 빛을 발한다.

      인삼을 찌고 말려 홍삼으로 만드는 과정은 진세노사이드의 구조를 변화시켜 체내 흡수가 용이하도록 돕는다. 삼계탕처럼 오랜 시간 끓이는 조리법 역시 열을 통해 성분의 추출 및 변환을 유도한다. 또한, 장내 미생물은 이러한 거대 분자들을 분해하여 인체가 흡수할 수 있는 더 작고 활성화된 형태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단순히 좋은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을 넘어, 찌고, 끓이고, 발효시키는 전통적인 가공 및 조리 과정이 바로 이들 약용 식물의 잠재된 효능을 깨우는 ‘열쇠’인 셈이다. 이는 전통적 지혜가 현대 과학의 난제인 생체이용률 문제를 선험적으로 해결해왔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기름은 줄이고 영양은 살리고, K-푸드 조리법의 과학적 건강미학'을 주제로, 찌고 삶는 한식의 조리법이 영양 손실을 최소화하고 노화의 주범인 최종당화산물(AGEs) 생성을 억제하는 원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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