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미정 칼럼] 한국인의 밥상에 깃든 발효의 지혜 2
    • 전통장, 고조리서에 담긴 발효의 지혜

    • △ 왜 우리 조상들은 콩을 발효해서 먹었을까?
      한식 발효의 세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통장이다.
      콩을 삶아 으깨고, 일부러 곰팡이를 피우고, 몇 달씩 기다려 만드는 이 음식을 왜 우리 조상들은 선택했을까? 신선한 콩을 그대로 먹는 것이 더 간편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조선후기 1670년도에 경북 안동 지역의 사대부 가문 여성 장계향이 쓴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 식문화와 발효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음식디미방’은 당시 음식 문화가 구술로 전해지던 시대에 문자로 남긴 실용 지식의 정리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남성 위주의 학술 기록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음식디미방’은 실제로 밥상을 책임졌던 여성의 시선에서 기록된 문헌으로 음식이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생활과 철학, 절기와 기후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단순한 조리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지혜를 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간장, 된장, 식초 등 장 담구는 법, 재료배합, 보관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전통장이 실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발효를 통해 콩의 영양을 극대화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깊고 풍부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하여, 전통장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 고추장의 탄생, 문헌으로 기록되다.
      지금은 전세계적인 열풍으로 불닭소스가 K-food의 대표 소스로 인기가 높지만 조선 전기만 해도 고추를 이용한 매운 음식의 맛은 우리 조상들에겐 생소한 맛이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 전래되었다고 하는(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고추품종이 있었다는 학설도 있다) 고추는 우리 식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에는 고추가 크게 활용되지 않았으나, 고추가 전래된 지 약 150년이 지난 1766년 유중림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에 고추장 제조법이 처음 등장한다. “메줏가루에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 또는 되게 쑨 죽을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만든 장”이라고 정의한 이 기록은 현재까지 고추장이 문헌에 등장한 최초의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조상들이 고추의 단순한 매운맛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메줏가루의 구수함, 전분질의 단맛이 발효를 통해 부드러워지고 음식에 사용하기 좋도록 만들어 사용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즐기는 매운맛 발효장의 원형이기도 하다.

      △ 메주, 모든 장의 시작점
      전통장의 핵심은 메주에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메주 만들기부터 장담그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가을 햇콩으로 메주를 쑤고, 볏짚에 싸서 발효시키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생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

      볏짚에 붙어 있는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면서 구수한 맛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자연 상태의 효모와 유산균이 더해져 복잡하고 깊은 맛의 장의 맛이 되어 다른 조미료 없이도 충분히 음식맛을 살릴 수 있다. 조상들은 미생물학적 원리를 몰랐지만, 경험과 직감으로 완벽한 발효음식을 만들어 내어 집안 식구의 건강을 살피고, 대대로 장 문화를 계승하였다.

      △ 지역별 특색, 장맛의 다양성
      고조리서를 살펴보면 지역별로 다양한 장 담그기 비법이 등장한다. ‘증보산림경제’에는 “고추장에 보리밥을 넣으면 더욱 좋다”거나 “찹쌀로 만들면 윤기가 난다”는 등의 다양한 장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는데 이는 각 지역의 특산물과 기후 조건에 맞춰 장맛을 발전시켜 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경상도의 진한 등겨장, 전라도의 고추장, 강원도의 막장 등 지역별로 독특한 장맛은 오랜 발효문화의 산물이다.

      △ 현대에 되살리는 전통장의 가치
      오늘날 우리는 발효식품의 건강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 황산화물질, 필수 아미노산 등 전통장에 함유된 영양성분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그 가치가 재평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전통장의 진정한 가치는 영양성분만으로는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340년 전 장계향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정성’으로 시간을 들여 기다리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슬로라이프의 지혜가 담겨있다. 매일 아침 장독대를 들여다보며 발효 상태를 살피던 어머니의 마음, 심지어 뜨거운 땡볕과 차가운 겨울을 매일 견디며 돌보던 장독의 장은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완성된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다.

      오늘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기업 소스의 간장, 고추장, 된장은 엄밀히 말하면 전통장이라고 할 수 없다. 대두단백을 최대한 짧은 시간에 산분해로 만든 공장식 소스에 가까우며, 콩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거나, 발효 과정 없이도 간장, 고추장, 된장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그 때문에 많은 주부들이 전통장과 혼동해 사용하는 현실이다. 공장의 대량생산으로 얻을 수 없는 유익한 발효산물이 바로 전통 발효장에 담겨있다. 새마을 운동 이후 사회적 구조가 고속성장만을 추구한 나머지, 천천히 만들의 지는 식탁의 귀중함은 점ᄎᆞ 놓치고 말았다. 산업발전으로 K-food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식탁의 본질을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할 때이다.


      △ 안미정 한국발효식문화협회이사
      現 한국발효식문화협회 이사 (2024. 3 ~ )
      現 한식대가 선정 (대한민국한식포럼) (2021. 7. 1 ~ )
      現 제35회 신지식인 선정 (한국신지식인협회) (20. 7. 1 ~ )
      現 수산물식품조리명인 (한국조리협회) (2019. 11. 3 ~ )
      現 한국조립협회 상임이사 (2019. 3 ~ )
      現 성림 대표 (2016. 7 ~ )
      現 통영음식연구소 대표 (2020. 2. 26 ~)
      前 한국치유음식진흥원 부회장 역임 (2020)
      前 대한민국 국제요리&제과 경연대회 심사위원 (2019)
      前 Korea 월드푸드챔피언십대회 심사위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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